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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Essay Thought 칼럼

궁예의 부친을 찾는 여정

혜풍엔터프라이즈의 시작은 대학 과제에서부터였다. 당시 해결 해야했던 과제는 일일답사보고서였는데, 일일답사에서 보고서의 주제를 뽑아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답사를 했던 곳은 강원도 철원의 역사문화였다. 후고구려의 수도 태봉이 세워진 곳이기도 해서 궁예와 관련된 유적지가 아주 많았고, 특히 한국현대사의 비극이 담긴 유적지도 많았다. 궁예의 태봉도성은 DMZ 안에 위치하고 있어 결코 가볼 수는 없고 그 근처의 태봉의 흔적만 아스라히 간직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주제가 너무도 없는 상황. 모두가 궁예와 후고구려, 혹은 후삼국시대의 얘기를 쓸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나는 차별점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궁예에 관해서 더 조사하다가 그의 부친설에 대한 3가지 가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 2가지는 학계에서도 직접 연구되었으나 세번째 가설인 단재 신채호가 주장했던 장보고의 외손자 설은 아직 논의된 적 없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이에 곧장 흥미를 느껴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궁예의 탄생설화부터 재검토했다. 그리고 궁예의 '탄생일'과 관련한 태조 왕건이 남긴 사료가 있다는 것도 확보했다. 태조 왕건의 탄생연도는 그가 고려의 태조가 되었기 때문에 확실히 남아있다. 그의 탄생연도, 그러니까 왕건의 띠를 기준으로 했을때 그 사료 안에 궁예의 띠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있더 것이다. 사료는 하나의 수수께끼 같은 글이었다. 고려 건국 이전에 후고구려, 아니 태봉에서는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왕이 될거라는 예언이 돌아다녔다는 내용의 사료였다.

그 사료에 따르면 왕건은 '계'의 해에 그리고 궁예는 '축'의 해에 태어났다. 탄생설화와 연결지어 생각한다면 '축'의 해, 음력 5월 5일이 궁예의 탄생연월일이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탄생설화대로라면 궁예는 '축의 해'였던 음력 5월 5일, 신라 왕이었던 '부친'에 의해 살해당할 뻔하고 유모가 간신히 살려 한쪽 눈을 실명했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궁예가 태어난 '축'의 해를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연도로 바꾼다면 과연 몇 년도일까? 60갑자로 60년마다 반복되는 패턴이라면 궁예가 태어난 해에 왕이었던 인물이 궁예의 부친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게 되자 나는 곧바로 이전에 배웠던 생애 첫 프로그래밍 언어 "스몰베이직"을 켰다. 궁예의 부친을 찾아줄 프로그램을 직접 구현해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과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했던 것을 넘어 되도 않는 실력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풀기 위한 프로그래밍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경험이 나로 하여금 혜풍엔터프라이즈라는 인문콘텐츠테크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